SHOUT OUT!
written by 가은





한참동안 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았다.
대개 아이들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람 잘못 골랐다가 큰코 다칠 바에 애당초 아이를 노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까마득한 기억의 편린들 중 유독 선명한 부분이 있다. 누군가에게 붙들려 흙더미 쌓인 공터에 방치된 기억. 감긴 눈을 뜨면 온 세상이 캄캄할 줄 알았는데. 어둠이 걷힌 눈앞에는 거짓말처럼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빨간 망토를 전사처럼 두르곤 반짝이는 얼굴을 하던 사람.
살면서 처음 만난 히어로였다.




누구나 히어로를 꿈꾼다.
단지 자질을 가진 이가 한정적일 뿐이었다. 혼자 초능력자일 때나 특별하지. 모두가 초능력을 가졌다고 누구든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별난 인물이 내가 아니라는 게 인정하기 싫은 결핍 같은 거였고, 나는 언제나 내가 전기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게 싫었다. 열 속성인 친구들은 겨울이면 친구가 아침에 사 온 붕어빵도 데워주고, 작은 난로도 만들어주던데. 정정하자면 능력 조절에 미숙한 내 역량 부족이 싫었다. 휴대폰을 충전시켜 주려다 부품을 터뜨리는 게 싫었고, 잘 다듬어진 여자아이들 머리를 폭탄으로 만드는 게 싫었다.


“네즈는 열외야.”
왜요?
너는 온 학급 전등을 죄다 꺼버리잖아.
선생님의 대답을 들은 학급 아이들이 잇다라 깔깔거렸다. 학교에서는 매 학기 초에 교실 문단속과 소등을 담당하는 전기 도우미를 뽑고는 했다. 다른 역할에 비해 훨씬 간단한 데다 봉사 시간도 받을 수 있어서 인기 있는 역할이었다. 나는 매 학기마다 전기 도우미에 지원했다. 그리고 매번 같은 이유로 당선되지 않았다. 내 1인 1역은 언제나 방과후 청소였다. 네즈는 이게 어울려. 빗자루는 망가뜨리지 않잖아. 내가 청소를 하는 날은 다른 아이들이 미리 소등을 해뒀다. 나는 노상 불 꺼진 교실을 열심히 쓸어담고 홀로 하교했다. 마법사라도 됐다면 빗자루를 타고 집까지 날아갔을 텐데. 이놈의 능력은 없느니만 못했다.

어릴 적 나를 구했던 히어로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꼬박 칠 년이 지난 뒤였다. 운 좋게 팬사인회 당첨권을 헐값에 구하게 된 덕분이었다. 아마 며칠 전 기사화됐던 사생활 논란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교적 헐값이라지만 지갑 사정 알만한 학생 시절 세 달치 용돈을 꼬라박아 얻게 된 기회였다. 어렸을 적 성장은 일 년이 수년치를 한다고, 당시의 앳된 얼굴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귀여운 구석 없이 한껏 치켜 올라간 눈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성공한 유명인들의 타락은 빈번하게 봐왔으니 그토록 동경했던 인물이 온갖 루머를 꼬리표처럼 달고 수염 덥수룩한 얼굴로 내 앞에 있어도 괜찮았다. 다만 재회에 긴장해서였을까. 괜찮지 않았던 건 내 손을 마주잡자마자 감전되어 처량하게 쓰러진 히어로 쪽이었다. 평생 온전할 것 같던 영원한 내 히어로.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사인회장에서 한참 멀어질 때까지 뒤도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달렸다. 등뒤의 셔터 소리가 나를 조준하는 총성처럼 들려왔다.

툭하면 주변이 망가지기 일쑤라 일 년 내내 후드티를 뒤집어쓰기를 택했다. 나를 꽁꽁 숨기는 게 최소한의 예방이었다. 엄마는 늘 디지털 시대에서 전기를 다루기란 원체 어려운 일이라며 타일렀다. 그런데 티비에는 전기로 사람을 돕는 히어로들이 자꾸만 등장해 내 심기를 긁었다. 다들 그럴 거라며. 꼭 나만 잘못된 것 같았다.




/ / /



 
어제와 바뀐 것 없는 하루였다. 
후미진 골목, 박스 더미에 기대 누워 잠을 자다 배가 고파지면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갔다. 바짓주머니에 굴러다니던 지폐가 손에 잡혔지만 도로 고이 모셔뒀다. 요즘 sns에서 인기라는 소세지빵의 남은 재고가 시야에 들어왔다. 남은 세 개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주변을 재빠르게 훑고 빵을 집어들었다. 손으로 피를 몰자 전기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요란하게 점멸하던 사방의 형광등이 팍 소리를 내며 일제히 꺼졌다. 불만 끄려던 심산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휴대폰 전원까지 전부 꺼버린 모양이다.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들의 소란한 반응이 볼만하다고 생각하며 포장지 깐 소세지빵을 베어 물었다. 그쯤의 반응이면 만족스러웠다. 충분한 재미를 얻었으니 돌아갈 생각이었다. 웬 시커먼 형체의 괴수가 들이닥치는 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난 전국 각지에서 품절대란이라던 빵 하나 꽁으로 얻었으니 될 일이었다. 무슨 선한 의도를 가지고 히어로 흉내를 낼 생각은 일절 없었다. 그런데 이 무르고 연약한 도시가 정말 무너져내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디에서 무료로 군것질을 하고 괴롭힐 대상을 탐색하라고. 내 안위를 위해 한 방 먹였다. 공격받은 걔가 다시금 공격해오니까 또 응당한 반응을 해 준 것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선량한 의도는 진짜 없었다. 이미 식도 넘어 뱃속을 항해 중일 소세지빵을 걸고. 정말, 맹세코 하나도.

다만 내가 괜히 위인이 못 됐겠냐고. 온 힘 쥐어짜 내보낸 왼손의 파란 전기는 금방 적의 힘에 잡아먹혀 뒤로 밀려났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달려들 만큼 대단한 정의감이 내게 있을 리 있나. 필사적으로 뒷걸음질쳐 편의점 밖으로 달려나갔다. 꼭 사인회장에서 도망치던 그날 같은 기분이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저녁 노을이 유난할 정도로 적색이었다.



현 시각, 의문의 괴한이 출몰하여 무분별한 공격을 해오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은 각별한 유의를 바랍니다. 처음 목격된 장소는 모 편의점으로……



일어나자마자 보게 된 뉴스에서는 CCTV에 녹화된 나와 괴수의 난투가 적나라하게 방영되고 있었다.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송출되었을 땐 빠르게 리모컨을 집어들어 티비 전원을 껐다. 유명 히어로들도 겉보기만 근사한 굼벵이들뿐이었는지, 죄다 소식 없이 잠적한 국가 재난 상황이었다. 전국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낌새가 이상한 하늘을 올려다보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이른 아침인데 하늘은 어제 저녁과 다름없이 핏빛이었다. 위화감이 들 정도의 핏빛.

세상이 난리통이어도 하루 루틴은 충실하게 수행했다. 깔아 놓은 폐지 위에서 몸을 일으켜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갔다. 싸움의 잔해로 물건들이 엎어진 채 뒹굴고 있었지만 아랑곳 않고 공짜 쇼핑을 즐겼다. 남은 먹거리를 챙겨가려는 셈인지 편의점에 들어온 아이 하나가 있었지만, 운 좋게 마지막 소세지빵을 얻게 되었다. 이거 인기 많은 이유를 알겠다니까. 편의점 밖으로 나오니 피난 중인 사람들로 길가가 빈 곳 없이 북적거렸다. 분주하게 밀려가는 인파 사이에 섞였다. 팔자에도 없는 주인공 포지션보단 겁먹어 도망치는 엑스트라가 적성에 맞지. 차라리 거기까지 생각하고 시선을 돌렸으면 좋았을걸. 다들 바삐 뛰어가는데, 그 사이로 발 접질린 아이 하나가 덩그러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나를 쫓아 편의점 밖으로 나온 괴수의 시선이 그 아이에게서 멈췄다.

작은 체구에 색이 밝은 머리와 눈동자. 아까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아이였다. 내가 집으려던 소세지빵을 먼저 손에 들었다가 날 위해 도로 놓아 주었는데. 나를 도왔던 사람의 위기를 외면하는 게 양심에 찔려서였는지, 홀로 우는 모습이 예전의 나와 겹쳐 보여 애틋해서였는지 모르겠다. 길다란 그림자가 그 애를 장악하고, 큼지막한 손이 조그만 머리통 위로 뻗어갈 때는 머리보다 몸의 판단이 빨랐다. 살결이 닿을까 싶어 길게 끌어내린 후드티 소매로 아이를 감쌌다. 아이를 안아 옮기고 그 앞을 막아섰다.

무의식이 행하는 공격은 의식을 얹었을 때보다 유연하고 강했다. 두꺼운 후드티 안으로 땀이 흘렀다. 옷 두께 때문에 흘러나가지 못한 힘이 속에서 응축됐다. 누군가 앞에서 능력을 드러내려 소매를 걷은 건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노랗고 파랗기만 하던 양손의 전류가 색을 합하고 있던 건 나마저 눈치채지 못한 찰나였다.

억압해왔던 힘을 뵈는 것 없이 쏟아낸 탓이었을까. 공격 직후에 다시 공격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제아무리 사고를 쳐도 뉴스에 이름 한번 호명된 적 없는 나와 등장하자마자 지상파 탄 신흥 조폭 사이엔 체급 차이가 분명할 수밖에 없었다. 힘이 빠진 사이 다가오는 적의 낌새를 곧장 알아채지 못했다. 잡히고 말겠구나. 위기의 순간, 나를 기적적으로 구해준 손길이 있었다. 줄행랑친 줄 알았던 히어로들이었다.

더는 두렵지 않아서 가슴이 뛰었다. 까마득히 올려다보던 이들의 선두에 서서 달리고 있었다.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수록 단단하게 손에 익어가는 에너지를 느꼈다. 일평생 삼키는 법만 배웠던 힘을 목표물을 향해 쏟는다. 그제서야 갑옷 같던 후드티를 벗어던졌다. 그늘 아래 홀로 우는 아이를 향해 달렸다. 행위에 대해선 확신만이 존재했다.


내 손길이 해악이 아닌 구원이던 첫 순간.
내민 손을 단단히 쥐던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때, 세상을 뒤덮은 어둠이 걷혀가고 있었다.




  • 잭 다니엘

    방금 전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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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벤자민 프랭클린

    1일 전
    작업의 페이지 및 모든 프로세스에 대해 궁금한 점, 질문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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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밀리 스톤

    2022.12.23
    아름다운 디자인과 레이아웃... 정말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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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리버 워렌

    2022.12.10
    예술 같은 놀라운 작품, 너무 감동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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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애나 스펜서

    2022.12.07
    다이빙 프로젝트가 아니라니... 믿을 수 없어요.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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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트 블랙

    2022.12.02
    세련된 느낌이 너무 좋아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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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링컨 토드

    2022.11.31
    디자인 멋있어요, 특히 디테일이 맘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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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크 블레이즈

    2022.11.12
    작품 하나에도 섬세한 표현 처리가 돋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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